최근 프랑스 전역에 있는 대형마트 카르푸 진열대에 ‘#슈링크플레이션’이라고 제목을 단 이색 안내문이 등장했다. 펩시, 네슬레, 유니레버 같은 세계적 식품기업의 26개 제품을 사러 온 소비자들 누구든지 알 수 있게 ‘공급업자가 이 제품의 용량을 줄여서 사실상 가격을 올렸다’고 큼직하게 써 붙인 것이다. 이 명단에 든 펩시의 립톤 아이스티 복숭아맛의 경우, 가격은 그대로인데 용량이 1.5L에서 1.25L로 줄어 가격 인상 효과가 20%다.
▶슈링크플레이션이란 영어 단어 슈링크(shrink·줄어들다)와 인플레이션(inflation·물가상승)을 합한 용어로, 10여 년 전 여성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이 도입했다. 제품 가격은 그대로 둔 채 크기와 중량을 줄여 가격 인상 효과를 내는 것을 말한다. 용어는 새롭지만 사실 기업들이 오랫동안 써온 기법이다. 2010년 미국 크래프트사는 톱니처럼 생긴 초콜릿 바 토블론을 개당 200g에서 170g으로 줄이면서 톱니 간격이 약간씩 더 벌어지게 초콜릿을 살짝 덜어냈다.
▶인플레이션이 덮친 지난해부터 슈링크플레이션이 나라마다 기승을 부린다. 미국에서 프리토스 감자칩은 봉지당 감자칩을 5개씩 덜어냈다. 선메이드 건포도는 봉지당 70알이 줄어 640g이던 한 봉지가 567g이 됐다. 116g이던 크레스트 치약은 소비자가 알아채지 못하게 양치질 15번 할 만큼의 8g을 줄여 제품을 내놨다. 도브 비누도 10% 작아졌다.
▶소비자들에게 ‘눈 가리고 아웅’ 격의 또다른 ‘숨은 인플레이션’으로는 스킴플레이션(skimflation)이란 것도 있다. 크기나 용량은 그대로 두는 대신, 값싼 원료로 대체해 원가 부담을 낮추는 것을 말한다. ‘인색하게 굴다’는 영어 단어 스킴프(skimp)에서 유래했다. 영국 수퍼마켓에서는 계란노른자 9% 함량의 마요네즈 대신 6%와 1.5% 함량을 판다. 이탈리아 식품기업 베르톨리는 올리브유 함량 21% 대신 10%로 낮춘 스프레이 제품을 내놨다. 소비자가 원료 성분이나 함량을 일일이 따지지 못하니 같은 값에 질 떨어지는 제품을 팔아 소비자에게 가격 인상 부담을 떠넘긴다.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내 소득보다 물가가 더 빨리 뛰니 가만 앉아 돈이 줄고 가난해진다. 프랑스 대형 유통업체가 ‘슈링크플레이션’ 기업 명단까지 공개하는 것은 원가 상승 핑계로 터무니없이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기업에 가격을 낮추라고 압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슈링크플레이션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소비자는 알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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