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슬로푸드

황교익 미각칼럼리스트 관련 글(펌)

 

 

‘당신의 미각을 믿지 마세요.’ 를 주제로 미각칼럼니스트 황교익 선생님의 이야기와 함께 관련된 테이스팅이 진행되었다. 평소 블로그나 책으로 황교익 선생님의 글들을 접했었기에 더욱 기대되었다.

들어오자마자 물, 네 조각의 가래떡과 함께 조청과 올리고당이 놓여있는 접시를 받고 대뜸 테이스팅을 했다. 참가자들 모두 눈썹을 치켜 올리고 진지하게 임한다. 찍어먹어 입에 들어오자마자 단 맛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 1초도 걸리지 않는 올리고당. 그에 비해 쌀, 엿기름 특유의 향과 함께 은은한 단 맛을 내는 조청.

 테이스팅에 사용된 조청은 전통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조금 더 쉽게 개량된 방법으로 생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마저도 사용하지 않고 더 편하고 저렴한 수입 옥수수로 만들어진 올리고당이나 물엿을 선호하는 것이 현실이다. 오랜 시간의 노동이 필요한 전통적인 방법의 조청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지금까지 그렇게 만들고 계신분의 이야기는 그 노고와 솜씨가 그대로 느껴져 접시에 남은 조청을 싹싹 긁어먹게 만들었다. 우리의 입맛이 자극적인 단맛에 길들여져, 아니 거의 중독된 듯이 정제되어 새하얗고 깔끔하고 단순한 단맛만 너무 찾고 있는 것 같다.

 

맛있고 좋은 음식을 먹으려면 반드시 사람의 노고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이 나를 대신한 누군가의 손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크게 와 닿질 않는다. 70년대까지만 해도 국민의 70%정도가 농민이었는데 그 이후 산업 개발로 인해 자본의 음식이 태어나기 시작했다니, 나는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고의 혹은 자의로 당연스레 자본의 논리에서 태어난 음식을 접하며 자랐을 것이다. 큰 기업에서 이익을 목적으로 생산한 편하고도 빠른 음식들이 식탁을 변화시켰다.

 

화학조미료 회사의 광고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이미지를 보여주셨다. 모유를 먹이는 엄마와 아기 밑에 '미원이 안전하지 않다면 모유도 안전하지 않습니다.'라는 카피가 적혀있다. 너무 뻔뻔하다. 먹어도 죽지 않으니 안전한 음식인가? 그런 음식을 안전하다고 부른다면 할 말이 없어지지만, 다양한 감칠맛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본래의 맛을 숨긴다는 점에서 나는 미원을 싫어한다. 포장마차에서 먹는 어묵국물과 잘 차려진 한식당에서 먹는 무국의 맛은 분명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염화마그네슘을 테이스팅 했다. 아주 소량 찍어먹었을 뿐인데 불쾌한 쓴맛이 계속 입안을 맴돈다. 이게 바로 천일염의 핵심자랑인 미네랄의 맛이라고 한다. 천일염은 분명 맛좋은 소금은 아니라고 하시는 황교익 선생님의 의견은, 이때까지 들어왔던 천일염 예찬론들과는 너무도 다르고 새로웠다. 어디에서도, 누구도 말해주지 않던 이야기였기에 놀라고 또 놀라버렸다. 무조건 미네랄 함량이 높다는 이유로 천일염을 선택한다면 그 쓴 맛을 가리기 위한 감칠맛, 곧 화학조미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하나의 놀라운 이야기는 바로 매실에 관한 것이었다. 요리에 관심이 많아 요리학원도 다녔고 한국음식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시는 분들도 만나보았는데, 요즘 인기인 매실효소를 담가 쓰는 것은 거의 필수이자 기본으로 여겼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 청매는 익지 않은 과일인데 그걸 왜 먹겠냐는 질문을 하신다. 이유는 ‘그게 원래니까’ 라고 머릿속에 박혀있다. 맛을 버려야 돈이 되는 유통구조 때문이라고 한다. 다 익은 향기롭고 부드러운 황매는 옮기는 도중 무르고 갈라져 상품성이 떨어지기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청매로 담근 효소음료와 황매로 담근 효소음료 두 가지를 시음해 보았다. 후자가 더 향기롭고, 과일의 단 맛이 주는 상큼한 단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과일이나 채소에 담긴 이런 불편한 진실들을 하나하나 들을 때 마다 꼭 음모론을 듣는 듯 충격적이면서도, 나 스스로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의문을 갖지 않았던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밤을 새도 모자를 거라고 하셨지만, 진심으로 밤을 새서 들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특히 평소 궁금했던 딸기에 대해 속 시원히 풀어주셨다. 노지딸기가 없어진 이유는 산성비이며 꽃이 떨어진 후 처음 열린 딸기가 가장 맛이 좋은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선생님의 대학시절, 따뜻한 날이 시작될 즈음에 딸기를 쌓아놓고 하는 일명 '딸기팅'은 다시 재현해보고 싶을 만큼의 톡톡 튀는 문화이다.

지금의 이런 실정들을 비판하기만 하지는 않으셨다. 한반도 농업환경의 한계와 유기농업의 문제점들도 함께 풀어놓으시며 이젠 자신이 직접 요리하는 방법을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감100%의 말도 해주셨다.

고등학교 때 한 역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객관적인 사실만을 보고 스스로의 가치관으로 정확히 판단할 줄 아는 것이 바로 '마음자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것을 갖는 것은 쉽지 않다고도 하셨다. 언제나 음식을 맛 뿐 아니라 문화와 역사와 환경, 인문학의 새로운 각도로 음식을 바라보시는 황교익 선생님은 바로 그 음식에 관한 깊은 마음자리를 가진 분이라고 생각한다.

락 콘서트를 볼 때처럼 헤드뱅잉을 한 건 아니지만 그만큼이나 내 머릿속을 복잡하고 어지럽게 그리고 동시에 즐겁고 흥미롭게 만든 맛콘서트였다. 두 번째 맛콘서트는 또 얼마나 뜨거운 열기로 계속될까?

장시내 Food for Change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