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최첨단 기술을 총동원해 만들어진 영국의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는 4만6000t급에 길이 270m, 폭 28m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배였다. 1912년 4월 10일 영국 사우샘프턴 항구를 떠나 뉴욕으로 향하는 첫 출항에 2200여 명이 승선했다. 매우 부유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새로운 삶을 찾아 미국으로 가는 이민자들이었다.
타이타닉호는 다른 선박으로부터 ‘빙산이 떠다니니 조심하라’는 경고 메시지를 몇 차례 받았으나 무시하고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결국 출발 나흘째인 4월 14일 밤 11시 40분 빙산과 충돌해 우현에 구멍이 나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은 여자와 어린이부터 구명정에 태우라고 명령했다. 실제로 여성의 74%, 어린이의 51%가 구조됐고 남성은 20%만 목숨을 건졌다. 객실 등급별로도 생존율에 차이가 있어 1등실은 62%인데 반해 3등실은 25%였다. 뉴욕 메이시스 백화점 소유주 이시도르 스트라우스는 구명정 자리를 양보했다. 아내 역시 남편과 헤어질 수 없다며 내려 노부부는 기우는 갑판 위에서 손을 잡고 마지막을 함께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월리스 하틀리와 그가 이끄는 7명의 악단은 아수라장이 된 배에서 동요하는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침몰하는 순간까지 3시간 동안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기관사들과 화부들은 승객 탈출을 위해 전기를 작동시키는 작업을 하다 최후를 맞았고 스미스 선장도 끝까지 남아 배와 운명을 같이 했다.
구명보트는 20척뿐으로 탑승 인원의 절반밖에 탈 수 없었는데 그마저도 65명 정원을 다 채우지도 않고 내려졌다. 무전기사가 긴급 구조 신호를 계속 타전했지만, 근처에 있던 캘리포니아호의 무전기사는 잠들어버렸고 뒤늦게 달려온 카르파티아호에 의해 구명보트에 탄 700여 명만이 구조될 수 있었다.
절대 가라앉지 않는 ‘불침선(不沈船)’이라 불리던 타이타닉호는 2시간 40분 만에 두 동강이 나 3800m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고 1500명 이상이 차디찬 물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역사상 최악의 해난 사고로 꼽히는 타이타닉호 참사를 계기로 1914년 해상에서의 인명 안전을 위한 국제 조약이 채택됐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제작한 영화 ‘타이타닉’은 1998년 개봉돼 당시 전 세계 역대 흥행 1위를 기록했고, 지난 2월에는 개봉 25주년을 맞아 고화질 3D로 재개봉되기도 했다. 111년 전 예상치 못한 비극 속 타이타닉호 사람들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랑과 용기, 희생의 이야기들이 여전히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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