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랑과 최경창의 사랑 이야기

 

 

 

고죽 최경창과 홍랑의 묘

 

 경칩(驚蟄. 3월 5일)을 열흘이나 넘겼으니 개구리도 잠을 깨고, 묏버들도 새 잎을 틔울 절기이다. 묏버들을 가려 꺾어 떠나는 임에게 쥐어준 홍랑을 만나러 파주 교하읍으로 간다. 그곳에 가면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애절하게 사랑을 나눈 고죽 최경창(孤竹 崔慶昌, 1539~1583)과 함경도 홍원 관기 홍랑(洪娘)의 묘가 해주 최 씨 선산에 있다.

 

고죽은 이달(李達), 백광훈(白光勳)과 함께 조선시대에 당나라 풍의 한시를 잘 지었다 하여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리는 뛰어난 문인이다. 명문가 해주 최 씨로 그의 조상으로는 고려 때 해동공자로 지칭되던 최충, 『보한집』의 저자 최자(崔滋),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했던 최만리 등이 있다. 고죽은 당대의 문인 이율곡, 정철, 이산해, 양사언 등과 어울렸다.

 

고죽이 홍랑을 만난 것은 그의 나이 35살, 정6품 문관으로 함경도 북평사(북병사의 보좌관 격)로 경성도호부에 근무할 때이다. 함경도로 발령을 받아 임지로 떠날 때는 가족이 동행할 수 없는 것이 당시의 국법이었다. 요즘 말로 최전방지대였기 때문에 나라에서 법으로 금지했던 것이다. 가족이 동행할 수 없다보니 자연 관기들이 수발을 맡아 했다. 『세종실록』에 ‘군사들이 가정을 멀리 떠나서 추위와 더위를 두 번씩이나 지나므로 일상의 사소한 일도 어려울 것이니 기녀를 두는 것이 합당하다.’ 했음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홍랑은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열두어 살 무렵에 잃고 고아가 된다. 그녀를 거두어 준 것은 마을의 의원이었다. 의원으로부터 글도 배운데다가 타고난 미모에 영특하기까지 하여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규수로 성장했으나 가난을 떨칠 수가 없어 관기로 들어가서 홍원 관아에서 지냈다. 일찍이 당대의 문사였던 최경창의 이름을 들었던 터에 그가 경성으로 부임하여 주연을 열 때 둘은 바로 마음이 통했던 것이다.

홍랑이 근무지인 홍원을 떠나 경성 군막에서 최경창과 함께 2년을 지냈다. 둘은 글이 통하고 마음이 통했다. 더구나 아버지의 얼굴도 못 보고 자란 홍랑으로서는 활 잘 쏘고 글 잘 짓고 피리 잘 불고 준수한 외모까지 지닌 고죽에게 연인의 정을 넘어 부정(父情)으로 다가갔다.

 

꿈같은 두 해의 세월이 흘러 고죽은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경성에서 함관령(咸關嶺)까지는 천릿길. 홍랑은 더 이상 고죽을 따를 수 없었다. 국법인 ‘양계(兩界의 禁)’을 어기는 것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양계의 금’이란 조선시대에 평안도 함경도 백성들은 그 경계를 넘어 남쪽으로 올 수 없었다. 이유는 두 지방이 척박한데다가 외적의 침입이 잦아 빠져나가는 인구를 그대로 방치하였다가는 텅 빈 마을이 될 것을 염려한 고육지책이었다. 법을 따르자니 임과의 이별이 죽음이고, 임을 따르자니 임을 두고 죽임을 당해야 하니 다음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홍랑은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으로 시조 한 수를 건넨다.

 

묏버들 갈해 것거 보내노라 님의손대.(산버들 골라 꺾어 임에게 보냅니다.)

자시난 窓 밧긔 심거 두고 보쇼셔.(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예 새 닙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셔.(밤비에 새잎 돋거든 날 본 듯이 여기소서.)

 

즉석에서 최경창은 이를 번역하여 홍랑에게 건넨다. 이름하여 『번방곡(飜方曲』이다.

 

折柳楊寄與千里人(절유양기여천리인)

爲我試向庭前種(위아시향정전종)

須知一夜新生葉(수지일야신생엽)

憔悴愁眉是妾身(초췌수미시첩신)

 

 두 시는 고죽과 홍랑의 묘 앞 시비 앞뒷면에 새겨져 있다. 이별할 때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이별의 정표로 주는 것은 중국 당나라 때부터의 풍습이다. 버드나무는 생명력이 강한 식물로 가지를 꺾어 아무 데나 심어도 다시 새 잎을 틔운다. 홍랑은 자신의 사랑이 영원히 재생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또 버들 ‘柳’는 머물 ‘留’와 음이 같으니 자신의 곁에 오래오래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밤비’또한 풍요와 생명력의 상징이니 둘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을 터이다.

한양에 온 최경창은 이듬해(1575년) 봄 병석에 눕는다. 앉으나 서나 임 소식만을 기다리고 있던 홍랑이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고죽의 글을 보자.

 

그 후에 소식이 끊겼더니, 을해년에 내가 병이 나 오래 낫지 않아 봄부터 겨울까지 자리 를 떠나지 못하였다. 홍랑이 그것을 듣고 즉일로 출발하여 무릇 칠주야(七晝夜)만에 이미 서울에 당도했다. 이때에 양계의 금령이 있었고 또 국상을 만나 소상이 이미 지났으나 평 시와는 같지 않았다.(최치만 발행 『고죽집』에서)

 

홍랑은 국법 두 가지를 어겨가면서까지 남장을 하고 서울로 온 것이다. 관기로서 근무지를 이탈한 것이고, 양계의 금령을 어긴 것이 그것이었다. 더구나 그때가 어떤 때인가? 명종의 왕비 인순왕후의 국상 기간이었다. 서인(西人)인 최경창을 향한 동인(東人)들의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홀랑은 함경도로 돌아가야 했다. 떠나는 홍랑에게 고죽은 이별의 시 한 수를 건넨다.

 

그대 보내기 아쉬워 보고 또 보며 그윽한 난초 건네니(相看脈脈贈幽蘭)

이제 떠나면 그 머나먼 곳 어느 날에 다시 만날까?(此去天涯幾日還)

함관령의 옛날 노래 다시 부르지 마시오.(莫唱咸關舊時曲)

궂은 비 내려 그대 떠나는 첩첩 산길 어둡겠지.(至今雲雨暗靑山)

 

 그 후 최경창은 경성절도사로 근무하다가 성균관 직강으로 발령을 받아 한양으로 돌아오다가 지금의 왕십리 부근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이 소식을 접한 홍랑은 한걸음에 달려와 고죽의 묘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한다. 어디 그뿐인가? 남정네들의 유혹적인 시선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칼로 그어 흉악하게 만들었다. 그 사랑의 깊이는 어디까지일까? 사랑의 힘은 얼마나 클까를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여자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남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하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님을 홍랑을 통해 알게 된다.

 

 시묘살이를 마친 몇 년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홍랑은 사랑하는 연인 고죽의 글들을 짊어지고 피난을 떠나 숨어살다가 전쟁이 그치자 최 씨 문중에 전하고 숨을 거둔다. 그리하여 최경창의 문집 『孤竹集』이 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최 씨 문중은 홍랑 사후에 문중회의를 열어 홍랑을 최경창 부부 묘 앞에 묻어주기로 했다. 최경창의 발치 끝에서 홍랑은 이 봄도 묏버들 노래를 하고 있을 게다.

 

 초행길 나서는 사람은 묘소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자유로를 따라 문산 방향으로 가다가 문발IC에서 56번 지방도로 접어든다. 4~5km 쯤 가면 문발교차로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좌회전을 하여 문발공단교차로를 지나 지금 한창 공사 중인 파주지역난방공사에서 좌회전을 하면 파주시 교하읍 다율1리 버스정류장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파주 운정지구로 한창 개발 중이기 때문에 버스정류장 주변은 난개발로 어지럽다. 어지러운 건물 중에 청석자동차 정비업소가 보이는데 그 옆길로 들어가면 나지막한 산자락에 사진에 보이는 묘들이 나타난다. 묘로 진입하는 오솔길조차 없어 밭두렁을 따라 걸을 수밖에 없다. 버스를 타고 찾아가는 것이 더 쉬울 수 있다. 영등포역 앞 신세계백화점 건너편에서 83번 버스(영등포~교하)를 타고 가다가 다율1리 정류장에서 내려 길을 건너 찾으면 된다. 종점 3정거장 전이다. 청석초등학교를 쳐서 지역난방공사를 찾아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