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정종-태종-세종-문종(2년 6개월)-단종-세조
문종은 세종의 첫째 아들, 단종은 12세에 왕이 오름. 둘째 수양대군과 한명회가 협력하여 세조로 만듬. 결국 세조는 한센병(피부병)에 걸림. 어린 단종은 김종서가 수렴청정함. 3개월만에 단종의 어머니도 돌아가심. 왕이된 세조는 수양대군 유배하고 살해. 안평대군도 유배. 수양대군 시설 명나라 사절로 갔다왔고 오면서 풍토병을 앎음. 그때 김종서가 죽였으면 달라질 수 있는 상황. 한명회가 노후에 쉴려고 만든 정자가 압구정이다. 세조는 단종을 상왕(살아서 권좌를 넘기는 왕) 폐지, 노산군 폐지, 서인으로 강등, 결국 살해시킴. 박팽년은 단종을 복위시키려고 한다. 세조는 박팽년에게 왕이라고 불러주면 살려주겠다고 했으나 여자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고,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원각사는 세조가 꿈에 단종의 어머니가 나타나 재치기를 했고 그 재치기가 묻은 자리에 종기가 나서 결국 병에 걸리는데 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절이 원각사(연산군 시절에는 술집으로 사용)이다. 이후 세조 둘째 아들이 예종이 20세에 요절.
역린이란-약점,트라우마, 분노를 뜻한다.
영화는 존현각 이라는 왕의 침전이 있는 건물에 자객 2명이 침입하던 날 하루의 내용이다.
숙종-경종-영조-정조-순조로 이어진다. 정성왕후가 죽자 정순왕후를 정실부인으로 들이는데 그녀의 나이 15세 였다. 영조는 66세였고 정조보다 5년 더 살았다. 사도세자는 3살때 한자를 뗄 정도로 천재였으나 갈수록 병정놀이에 심취. 결국 아버지의 만류 등 갈등과 반항심으로 정신병(울화병)을 앓는다. 수시로 사람을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었는데 피해자만 수백명이었다. 혜경궁홍씨가 쓴 한중록에는 무섭던 당시의 표현이 있다. 결국 역적을 죽인다는 명분으로 가로 160cm, 세로 160cm 뒤주에 넣어 죽임(9일만에 꺼냈으나 사망) 정조나이 11살이었다. 영조는 손자인 정조를 사랑했고, 역적의 아들을 왕(역적지자불위군왕)으로 할 수 없어 죽은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시켰다.
정조는 25세에 왕위에 오른다. 취입식 날 자기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노론과의 갈등으로 1년뒤 살해하기 위해 2명의 자객을 보낸다. 침전에 자객이 들어간 것은 조선 역사 전무후무한 것이라 한다.
ㅇ 혜경궁 홍씨 : 정조보다 15년 더 삼)
"내가 살아오 사는게 아니고, 가슴에 불이 일어나고, 가슴을 쥐어 뜯다가 벽을 처
도 잠을 이룰 수 없다."
이후 정조가 어머니의 친인적을 해하고, 친인척은 정조를 해하는 일들이 지속된
다.
ㅇ 구선복 : 능지처참(서서히 고통을 느끼면 죽는 것)을 당하는데 당시 뒤주를 지키
고 있었다. 사도세자가 누구냐고 했더니 직급을 말하지 않고 구선복이라고만
하였고, 뒤주 앞에서 밥까지 먹기도 한 인물
ㅇ 정조 : 숙의소(경호실) 확대, 장용영(경비부대) 창설-국가 군대보다 경호부대가 더 강했다. 규장각을 만들어 집무실로 활용. 정약용 등 젊은이 등용해 교육. 노비의 면천을 하려했으나 당대는 안되고 아들 순조때 66,000명 해방. 수원화성을 만들어 신세계를 만드려 했다. 사도세자 묘를 서울에서 풍수지리를 참작하여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다는 수원으로 옮김. 이장 직후 순조가 생김. 생일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생일과 같았다. 이것이 묘를 잘 쓴것이라 여겼다. 1804년 성에 들어가 살고 해당 모델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에 있었다. 그러나 등에 작은 종기가 머리까지 번져 1800년, 아들이 15세 때 죽고만다. 어린 순조가 왕이 되니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하고 정조의 계획을 모두 폐기, 노론을 재 등용한다. 조선은 27대 왕 중 12명이 종기 등으로 죽었다.
'자유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산층 기준 (0) | 2014.05.19 |
---|---|
TOO LATE TO START? (0) | 2014.05.19 |
울프의 법칙 (0) | 2014.05.02 |
2014 한국서점편람 (0) | 2014.04.28 |
심층적 학습을 돕는 최고의 방법은 독서 (0) | 2014.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