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심판 공포’로부터의 자유… ‘현세 쾌락’만이 진짜 삶[서동욱의 세계의 산책자] 죽음
한국농촌희망연구원장2023. 8. 11. 19:08
(41) 에피쿠로스의 정신
‘영혼은 불멸’하다는 믿음이
사후 세계를 두렵게 해
작은 정원·친구 서너명…
소박한 삶 살면서
현세의 즐거움 되찾아야
원자의 역동적인 변화통해
‘혁명적 사건’도 일어나
마르크스 사상에도 큰 영향
위스키 가운데 ‘에피큐리안(에피쿠로스주의자)’ 그리고 ‘헤도니즘(쾌락주의)’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 있다. 멋진 이름들이다. 성찬에 쓰인 포도주는 우리를 천상으로 인도할지도 모른다. 포도주는 확실히 성스럽다. 그러나 ‘생명의 물’이란 뜻을 지닌 위스키는 지상에서의 우리 삶을 즐겁게 해준다. 그러니 지상의 쾌락에 몰두하는 에피큐리안과 헤도니즘이라는 이름을 가질 만하다. 술병에 이름을 새긴 에피쿠로스(기원전 341∼270년경)는 데모크리토스의 뒤를 잇는 고대의 대표적인 유물론자이고 쾌락주의자이다. ‘유물론’과 ‘쾌락’, 이 두 단어가 에피쿠로스를 대표한다. 그런데 지금 철학의 역사를 교과서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에피쿠로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낡은 것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현대의 전위적인 정신들을 이끄는 이름이 에피쿠로스이며, 에피쿠로스의 정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현대의 정신을 이해한다는 것이기에 이 철학자의 이름은 숙고해 볼 가치를 가진다.
단적인 예로 스티븐 그린블랫의 ‘1417년 근대의 탄생’을 보자. 이 책은 잊혔다가 15세기에 새로 발견된 고대 문헌,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가 어떻게 사람들의 정신에 작용해 중세를 마감하고 자유롭고 밝은 새로운 세계, 르네상스를 탄생시켰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루크레티우스의 저 책은 바로 에피쿠로스 철학을 집대성하여 후세에 물려주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고대와 중세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이라면, 현대는 에피쿠로스의 것이다.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육체가 소멸한 뒤에도 불멸하는 영혼의 존재를 논증했다. 사후엔 육신은 사라지고, 살아생전 우리가 양육한 영혼만이 저승에서 영원히 살아남아 그 양육된 바에 따라 이로운 일도 해로운 일도 겪게 된다. 후에 플라톤을 디딤돌 삼아 우뚝 서게 된 기독교는 이런 생각을 이렇게 반복한다. 영혼은 사후에도 불멸하므로 생전에 한 일에 따라 보상을 받기도, 벌을 받기도 한다.
반면 에피쿠로스에겐 육체가 죽은 뒤에도 영원히 살아남는 영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물질일 뿐이다. 이 사실은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 있을 때 죽음은 나와 무관하고, 내가 죽어 사라졌을 때 죽음은 이미 사라진 나를 괴롭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은 자, 즉 분해된 자는 감각이 없으므로 죽음은 그를 괴롭히지 못한다. 결국 죽음은 산 자와도 죽은 자와도 관계가 없다. 오히려 죽음의 공포는 오히려 영혼 자체가 불멸하여 영원히 지속한다는 믿음에서 기인한다. 불멸하는 영혼을 영원히 괴롭힐 수 있는 가능성이 죽음을, 사후 세계를 두렵게 한다.
따라서 철학이 영혼이 불멸한다는 견해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면, 철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공포로부터의 자유이다. “철학에 자신을 내던지고 종속시킨 이는 기다릴 필요없이 즉시 해방된다. 철학에 종사하는 것 자체가 자유이기 때문이다.”(고병권 역) 마르크스는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에피쿠로스의 저 말을 인용하고 있다. 그는 에피쿠로스의 독창성을 밝힌 논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마르크스의 삶은 에피쿠로스의 저 구절의 실천이라 해도 좋을 텐데, 그의 삶은 온통 철학함을 통해 자유롭게 되는 과정이었다.
누가 이런 에피쿠로스의 정신으로부터 태어난 현대인인가? 먼저 불멸하는 피안의 삶의 허구성을 고발하며 현세적 삶만을 긍정한 니체가 있다. 니체는 ‘즐거운 학문’에서 에피쿠로스의 사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정신적인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왔다.”(안성찬·홍사현 역) 또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는 이런 찬사를 던지기도 한다. “에피쿠로스는…모든 시대에 걸쳐 살아왔고 여전히 살고 있다.”(김미기 역)
니체가 보기에 어떤 의미에서 세계의 정신사는 사도 바울과 에피쿠로스의 싸움의 기록이다. 사후에 불멸하는 영혼의 세계를 믿는 이들과 현세적 삶에 충실하고자 하는 이들의 싸움. 이 싸움은 ‘성서’가 기록하고 있기도 한데, 바울이 철학자들의 고향 아테네에 찾아가 죽은 자가 되살아났다는 연설을 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다.(‘사도행전’, 17:32 참조) 그 비웃는 사람들 가운데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이 있었다. 이 둘 사이의 대결은 ‘죽음’의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난다. 니체가 보기에 바울은 죽음 이후 내세에서의 심판에 대한 공포를 끌어들여, 당시 에피쿠로스주의가 지배하던 로마를 빼앗은 자이다. 니체는 ‘안티크리스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에피쿠로스가 ‘무엇’과 싸웠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루크레티우스를 읽어보라.…그는 그리스도교에 맞서 싸웠다.…불멸을 부정한다는 것은 당시에 이미 진정한 ‘구원’이었다. 그리고 에피쿠로스가 이겼을 수도 있다. 로마의 존경할 만한 사람은 전부 에피쿠로스주의자였기에: ‘그때 바울이 등장한 것이다.’”(백승영 역) 에피쿠로스의 정신 아래 선 니체 철학이란 바로 내세의 공포를 발명한 바울에 맞서 현세의 즐거움을 되찾는 것이다. 현세 그 자체를 긍정하는 것이다.
온전히 긍정되어야 하는 현세의 쾌락이란 어떤 것인가?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에피쿠로스의 이 쾌락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사치의 철학자―하나의 작은 정원, 무화과나무, 약간의 치즈 게다가 서너 명의 친구들,―이것이 에피쿠로스의 사치였다.” 이처럼 에피쿠로스의 쾌락은 방만한 것이 아니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은 소박한 삶을 구성함으로써 얻어지는 쾌락, 마음의 동요를 피해 도달하는 ‘평정(아타락시아·ataraxia)’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이 기록하듯, 에피쿠로스의 마지막 날들은 배뇨의 어려움과 이질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어려움 속에서도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찾는데, 그 쾌락에 대해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우리가 함께 했던 토론을 기억하며 여기서 얻는 내 영혼의 기쁨이 이 모든 고통과 맞서고 있다.”(김주일 외 역)
이 쾌락을 에피쿠로스의 이름과 더불어 좀 더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는 이도 있다. 바로 독일관념론의 대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셸링. 그러나 철학자보다는 시인으로서 셸링이다. 셸링은 젊은 시절 에피쿠로스의 이름을 제목에 넣은 급진적으로 반기독교적인 시를 썼는데, 그것이 ‘하인츠 비더포르스트의 에피쿠로스적 신앙고백’(1799)이다. 당시 낭만주의 그룹을 이끌고 있던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무종교에 대한 셸링의 열광을 담고 있는 이 시를 낭만주의자들의 기관지 격인 ‘아테네움’에 싣고자 했다. 애초부터 이런 계획에 반대했던 형 아우구스트 슐레겔은 괴테에게 조언을 구한다. 시를 읽고 충격을 받은 괴테의 충고에 따라 슐레겔 형제는 이 멋진 시의 발표를 포기하게 된다. 셸링의 유고 속에서 찾은 이 작품의 몇 구절을 읽어보면 우리는 왜 괴테가 충격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나의 유일한 종교는/ 내가 아름다운 무릎을 사랑한다는 것,/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그리고 감미로운 향내가 나는 꽃들,/ 모든 쾌락으로 가득 찬 자양분,/ 모든 사랑의 감미로운 충족./ 이것이 종교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 어떤 종교에도 나는 더 이상 만족하지 않는다./ 교회에 가지도 않고 설교도 듣지 않는다./ 모든 믿음에 완전히 지쳐 버렸다./ …/ 나는 바보짓을 하기보다는/ 무신론자로 남고 싶다.”(홍사현 역) 셸링의 자유로운 정신을 보여주는 멋진 작품이다. 내세의 두려움을 가져오는 종교를 넘어 현세의 자유를 구가하고자 하는 셸링의 정신을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가 이끌고 있다.
마지막으로 에피쿠로스주의자 마르크스가 있다. 현대 사상과 정치 및 사회 전반에 강력한 영향을 준 유물론의 완성자 마르크스의 출발점이 바로 에피쿠로스이다. 그는 스물세 살 무렵인 1841년 완성한 박사학위 논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에서 추상적이고 기계적인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과 대비해서 역동적인 변화를 그려내는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을 부각시켜 보인다. 유물론이 원인에서 결과에 이르기까지 천편일률적인, 맥빠진 기계적인 과정이 아니라 얼마나 ‘역동적인 과정’을 포착하는지를 에피쿠로스의 사상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이런 역동적인 변화, 인간의 역사라는 맥락에서 말하면 ‘혁명적 사건’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편위(clinamen)’이다.
세상은 더 나눌 수 없는 자연의 최소 단위인 원자와 이 원자가 운동하는 공간으로만 이루어졌다. 원자들은 똑같은 속도로 떨어져 내린다. 그렇다면 원자들이 서로 부딪치고 결합하며 이런저런 사물을 형성할 기회가 전혀 없지 않겠는가? 이것이 데모크리토스 원자론의 난점이다.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편위는 원자의 가장 내적인 운동으로서 원자가 방향을 바꾸는 작용을 뜻한다. 원자들이 제각기 방향을 바꾼다면 서로 충돌하고 합쳐지며 사물이 만들어지는 ‘창조’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편위 때문에 자연은 천편일률적인 기계적인 법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아주 새로운 사건, 역동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는 편위가 자연 안에 ‘우연’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편위 때문에 자연 세계의 원인들은 천편일률적으로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고, 수많은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개입해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마침내 결과는 인간의 눈이 따라갈 수 없이 다양해진다. 그래서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은 혁명적인 변화로 보인다. 젊은 날의 마르크스가 에피쿠로스로부터 배운 이런 역동적인 변화의 사상은 원숙기의 마르크스에겐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혁명’ 사상으로 자라난 것이 아닌가? 이처럼 현대를 여는 사상가들, 니체, 셸링, 마르크스의 반항적이고 혁명적인 사상의 원천에는 에피쿠로스의 정신이 있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
■ 용어설명 - 편위(clinamen)
원자의 운동이 근본적으로 변화무쌍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에피쿠로스의 사상을 집대성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편위를 이렇게 설명한다. “물체들이 자체의 무게로 인하여 아래로 움직이고 있을 때…만일 그들이 기울어져 가 버릇하지 않았다면…충돌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그래서 자연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못했을 것이다.”(강대진 역) 이 편위 때문에 원자들은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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