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시의 순응 실험
Asch’s Conformity Experiment
사람을 움직이는 100가지 심리법칙
“2 더하기 2는 5이다.”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씀처럼, 하늘이 무너져도 2 더하기 2는 4이고 그것이 진리이겠지요. 그러나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의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에게는 그러한 생각의 사치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자문합니다.
“만약 국가가 ‘2 더하기 2는 5’라고 선포하고 모든 사람이 이를 믿는다면, 그것이 바로 진리가 되는 것 아닐까?”
그리고 스스로 자문했 듯 비밀경찰에 잡혀가 고문을 당하면서 고백합니다.
“2 더하기 2는 5일 뿐 아니라 3도 될 수 있고, 4도 될 수 있다.”
흔히들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은 강제할 수 있지만 생각은 강제할 수 없다고 합니다. 비록 상황에 따라 입으로는 다른 말을 할 수 있어도, 개인이 신봉하는 진리는 쉽사리 바뀌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렇게들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심리학자 솔로몬 애시(Solomon Asch)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사람이란 기본적으로 부화뇌동하는 존재이며, 진리를 추구하기보다는 다른 사람과 보조를 맞추려 하는 존재라고 가정했습니다. 1952년 필라델피아에 있는 스와스모어 대학의 한 연구실에서 애시와 그 동료들은 피험자들을 또 한 번 골탕 먹일 과제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제작한 한 장의 카드에는 직선이 하나 그어져 있었고, 또 다른 카드에는 세 개의 직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카드에 그려진 세 개의 직선 중 하나는 먼젓번 카드에 그려진 직선과 길이가 같고, 나머지 두 개는 전혀 다른 길이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애시와 그의 동료들은 피험자에게 직선이 하나 그려진 카드와 세 개 그려진 카드를 차례로 보여주고, 두 번째 카드에 그려진 세 개의 직선 중에서 첫 번째 카드의 직선과 길이가 같은 선을 골라내라는 과제를 주었습니다. 이는 사실 너무나 쉬운 과제였기 때문에 일부러 틀리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오차 없이 정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실험은 이제부터였답니다.
애시는 연구진 중 두 사람을 시치미 뚝 떼고 피험자군에 몰래 끼어들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실제 피험자가 앞과 동일한 과제를 수행할 때마다, 두 가짜 피험자들이 약속한 대로 동일한 오답을 자신 있게 큰 소리로 답하도록 정해놓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피험자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지 보고자 한 것이지요.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놀랍게도 피험자의 절반 가까이는 눈에 빤히 보이는 정답 대신 가짜 피험자들이 우기는 직선을 답으로 제시하였습니다. 피험자들은 처음에는 가짜 피험자들의 답변을 못 믿겠다는 듯 자세히 쳐다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하였지만, 결국 목소리 큰 사람의 의견을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2005년 애틀랜타의 에머리 대학교에서 근무하던 신경과학자 그레고리 번즈(Gregory Burns)는 이러한 현상을 일으킬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를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들은 fMRI(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기능성 자기공명영상)라는 최신 측정 기술을 이용하여 연구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를 정리하면 피험자가 정답을 알면서도 남들을 의식해서 마지못해 틀린 답변을 내놓은 것이 아니라, 지각 자체가 변화하면서 실제로 왜곡된 지각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들의 눈에는 엉뚱한 직선이 먼젓번 카드의 직선과 같은 길이로, ‘실제로 그렇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대중의 의견에 동조하게 되는 것은 인간 심리의 근본적 취약점입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의견과 대중의 의견 사이의 불일치에 대해 의식을 하고 갈등을 겪다가도, 어느 시점부터는 나 스스로도 그렇게 믿게 되는 법입니다. 그러는 와중에 미국 국민들은 사담 후세인이 대량 살상 무기를 숨겨놓았다고 믿었고, 일본 국민들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믿게 된 것입니다.
집단 속의 한 개인으로 살면서 집단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한편 또 다른 사람들은 무조건 집단의 의견에 반대하면서 자신을 용기 있는 사람이라 치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둘은 모두 원칙적으로 같은 반응입니다. 스스로 객관적 증거를 저울질하여 진리를 추구하지 못하고, 무조건 집단의 의견에 순응하거나 반대하고 비판하는 것 모두가 자신을 잃어버리고 판단을 집단에 양도해버린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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