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심층 인터뷰]
아파트 하나 마련하려 평생 악착같이 산 부모 세대
그 아파트서 자란 자식들, 단칸방서 시작 엄두도 못내
"나처럼 살면 큰일나는 줄 아는 아들… 답답하고 착잡"
반면 자식 세대는 '출발점이 다르면 영영 따라잡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경우가 많다. 취재팀이 혼주 36명과 신혼부부 77쌍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사이엔 뚜렷한 심리 격차가 존재했다.
- 서울 동작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양원진(가명·62)씨가 자신이 근무하는 아파트를 올려다보고 있다. 일반 기업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양씨는 딸과 아들의 결혼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경비원으로 재취업했다. /김효인 기자 hyoink@chosun.com
부모 세대가 희생을 감수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자식 세대는 희생을 요구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취재팀이 만난 신혼부부 77쌍 가운데 "주위에서 혼자 힘으로 출발하는 사람을 봤다"는 사람은 7쌍에 불과했다.
대다수가 "부모에게 기대서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남들도 나만큼 지원받는다" "나는 덜 지원받은 편"이라고 답했다. 부모가 더 나이 들었을 때 생활비를 지원하겠다는 사람은 "10만~20만원씩 용돈을 드리겠다"는 사람까지 다 합쳐도 20쌍에 그쳤다.
이런 현실에 대해 부모들은 "서글프지만 요즘 애들은 우리와 다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주부 김정자(가명·54)씨는 32년 전 스물두 살 때 화물트럭 모는 남편과 결혼했다. 서울 당산동 시댁에 들어가 시부모를 모시고 살다가, 2년 만에 250만원을 모아 다세대 주택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신림동 언덕배기에 단칸방을 얻었다. 하지만 지난 5월 결혼한 아들은 "좋은 데서 출발하고 싶다"고 했다.
"결혼할 때 남편이 월 10만원 좀 넘게 벌었어요. 서울에 전세방 구하려면 싼 곳도 200만원은 했지요. '있는 대로 맞춰 살자'고 생각해 시댁에 들어갔어요. 구멍난 양말 꿰매 신고, 오래된 옷은 버리기 아까워 시장에 내다 팔면서 전세값을 모았어요. 그런데 아들은 나처럼 살면 큰일 나는 줄 알아요. 자기가 모은 돈은 2000만원뿐이면서…."
전북 전주에 사는 김해순(가명·58)씨도 32년전 120만원짜리 변두리 전세방(17㎡·5평)에서 출발했다. 우체국 다니는 남편이 월 7만원씩 벌었다. 그 돈으로 그 방에서 자식 셋을 키웠다. 난방 되는 아파트에 살고 싶어 식당 일도 하고 청소 아르바이트도 나갔다. 한 달에 한 번 통닭 사 먹는 게 사치였다. "결혼 11년 만에 4000만원짜리 전세 아파트를 얻었어요. 계약하기 전날 밤,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어요. 꿈같은 밤이었지요."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이순심(가명·53)씨는 "우리 땐 다들 조금씩 살림 불려가는 재미로 살았는데 요즘 사람들은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가려고 한다"고 했다. 이씨의 딸은 지난 2월 옆동네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신랑 측이 1억원, 이씨가 2000만원을 댔다. 이씨 자신은 27년전 700만원짜리 원룸에서 시작했다.
"결혼 15년 만에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하던 날, 12층 베란다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63빌딩 전망대에서 보는 것보다 야경이 아름다웠어요. 하늘을 보면 붕 떠서 날아가는 것 같고 땅을 보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죠. 제 딸이 그 기분을 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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