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발표한 '2018 청소년 통계'를 보면 2007년부터 9세부터 24세까지 청소년의 사망 원인 1위는 고의적 자해, 즉 자살이다.
2016년 기준 10만명당 7.8명이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고 있다.
자살 충동을 느낀 청소년은 4명 중 1명일 정도며 극단적인 선택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서울시 통계에 의하면 학업에 따른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불안, 부모님들의 지나친 간섭 순이었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금문교에서 뛰어내린 사람 중에서 3% 정도가 자살에 실패하고 목숨을 건진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은 뛰어내린 순간 바로 후회했다고 한다.
2003년 미국 뉴요커지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뛰어내린 순간 인생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죽음을 선택할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면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조금만 달리 생각해서 목숨을 끊는 일은 말아야 한다.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당장은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역경이 경력이 되는 것처럼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질 테일러 하버드대 박사는 화가 나 있거나 분노 또는 절망의 상태에서 90초만 참아낸다면 그 감정은 식어버린다고 했다.
화를 내는 순간 스트레스 호르몬이 온몸의 혈관을 타고 퍼지는데, 90초가 지나면 저절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순간적인 분노를 못 이겨 스스로 삶을 포기한다면 결국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남기게 된다.
유서 중에 '죽어서도 복수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자살을 살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복수로 실행한다면 이것은 전혀 복수가 되지 않는다.
당사자는 목숨을 바칠 만큼 절실한 문제지만 가해자에게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주목할 것은 가해자들은 쉽게 잊어버린다고 한다.
결국 자살하는 사람만 손해다.
복수는 당당하게 잘 사는 모습으로 하면 된다.
조지 허버트가 말한 것처럼 "잘 사는 것이 최고의 복수"인 셈이다.
외로움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정호승 시인의 시 '수선화에게'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산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 눈물을 흘리고, 산 그림자도 외로워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라고 했다.
산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너무 일찍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죽음으로 복수를 하려거든 꼭 기억했으면 한다.
최고의 복수는 살아서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임창덕 청소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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