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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칭(Watching)

관찰자 효과는 양자물리학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이스라엘의 와이즈만 과학원이 1998년 실시한 이중슬릿 실험이다. 세계적인 물리학 전문지 물리학 세계는 이 실험을 과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실험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중슬릿 실험을 보면 우리의 마음이 어떤 원리로 만물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운명을 창조해 내는지 알수 있다고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히는 파인만 박사도 목소리를 냈다.

 이중슬릿 실험의 결론은 이것이다.

미립자들은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자기를 바라보는지 언제나 컴퓨터처럼 정확하게 읽고 거기에 맞춰 변화한다는 것이다. 실험자가 미립자를 입자라고 생각하고 바라보면 입자의 모습이 나타나고 물결(파동)으로 바라보면 물결의 모습이 나타나는 현상을 양자물리학자들은 관찰자효과라고 부른다.

이것이 만물을 창조해가는 우주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라고 양자물리학자들은 정의한다. 양자물리학자 울프 박사는 관찰자 효과를 신이 부리는 요술이라고 부른다.

음악을 얼마나 오래 할 것인가?”

아이들의 대답이 세가지로 나왔다.

“1년만 하다 그만둘 거에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할거에요.”

전 평생 하며 살거에요.”

아이들의 음악 실력을 비교해 보니 평생 연주할거라는 아이들의 수준이 1년만 하고 그만 둘거라는 아이들보다 4배가 더 높았다. 똑같은 기간 똑같은 시간을 연습해도 4배의 차이가 났다. 평생 하겠다는 아이들이 일주일에 20분씩만 연습해도 더 많은 시간 연습하는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더 실력이 좋았다.

결론은 당연했다. “1년만 하고 그만둘 거에요.”라고 말한 아이들은 자신을 음악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평생하며 살 거에요.”라고 말한 아이들은 난 음악가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마음속에서 음악가로 바라보는 아이들은 남들보다 훨씬 더 적게 연습해도 이미 훌륭한 음악가가 된 것처럼 특출한 재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누구로 바라보느냐 하는 단순한 시각의 차이가 재능의 차이를 큰 격차로 크게 벌려놓았다. 자신을 음악가로 바라보는 아이는 마음을 활짝 열고 음악을 완전히 받아들인 자세가 되어 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자신을 음악가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음악적 재능이 4배가 뛰어 오른다.

 

 


 

어린 시절 내내 우울의 늪과 생각의 감옥에 머물렀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다양한 갈등이 가득한 전쟁터였다. 부모님의 애정을 전혀 느낄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났다. 내가 스무살 되었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는 20년 내내 알콜중독으로 가족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나는 우리 가정이 늘 진흙탕처럼 느껴졌고, 집에 머물면 전쟁터의 두려움이 매일 가득했다.

가정 환경에서 부모님에게 충분한 애정이 채워지지 못해 나는 고슴도치로 성장했다.

청소년 시절 내내 우울이 가득했고,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날들이 일상이었다. 우울감과 친구였던 낮은 자존감은 늘 나를 버림받은 아이라고 정의해 주었다. 나는 부모에게조차 사랑받을 수 없는 쓰레기라고 이 세상에서 나를 사랑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속삭였다.

덕분에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게 하고, 아직 펼쳐지지 않은 내 미래를 끝없이 비관하게 하는 생각의 감옥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생각의 감옥 안에서 나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높은 성벽을 끝없이 쌓아갔다.

태어나서 20년을 살아오는 내내 우울의 늪과 생각의 감옥에서 외롭고 고통스러웠다.

생각의 감옥은 혼자서는 나갈 수 없는 미끄러운 구덩이같았다. 어느 누구도 나를 구덩이에서 건져주지 못했다. 감옥에 살면서도 나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늘 살아왔으니까

 그런데 20대 초반이 되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생각의 감옥을 탈출하게 해주는 마스터키를 발견했다. 바로 관찰자 효과였다. 20여년전이라 관찰자 효과라는 개념도 없었고, 그런 단어도 전혀 몰랐지만 나는 관찰자 효과를 나 자신에게 적용했고, 생각의 감옥에서 탈출했다.

   

 

 관찰자 효과를 깨닫게 된 것은 성경묵상을 통해서였다.

호기심에 성경을 읽기 시작하다 창세기 12장의 아브라함과 사라의 스토리에 시선이 머물렀다. 노부부가 될 때까지 불임의 결핍을 안고 살아가던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 스토리를 묵상하며 거대한 깨달음이 전율되어 왔다.

하나님이 큰민족을 이루고 이름을 창대하게 해주겠다고, 너는 복덩이가 될것이라고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면서 살고 있던 아버지 고향집을 떠나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하나를 믿고 단호하게 용감하게 고향을 떠나 나그네살이로 살아갔다.

큰민족을 이룬다고 했는데 아브라함은 99세가 될 때까지 아내 사라를 통해 자식을 낳지 못했다. 사라가 오랜 불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갑자기 아브라함의 이름을 개명해 주셨다. 원래 아브라함의 이름은 아브람(존귀한 아버지)이었다. 자식도 아직 없는데 아브라함(열국의 아버지)으로 이름을 바꾸라고 하셨다. 아내 사라도 원래 이름은 사래(존귀한 어머니)였다. 사래의 이름도 사라(열국의 어머니)로 바꾸어 부르라고 하셨다.

자식이 아직 없는 노부부에게 하나님은 열국의 아버지’, ‘열국의 어머니라고 서로를 부르라고 하신다. 현실은 아무것도 없지만 마음속으로 열국의 아버지, 열국의 어머니가 될 것을 바라보고 될 것을 믿고 언어로 먼저 선포하라는 것이다.

노부부가 이름을 개명해 서로에게 열국의 아버지’,‘열국의 어머니라고 호칭을 부를 때마다 얼굴이 빨개지며 웃음이 터지지 않았을까 나는 생각했다. 부부가 서로를 열국의 아버지’, '열국의 어머니로 바라보며 1년 동안 호칭으로 부른 뒤 기적적으로 아들 이삭이 태어났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사라는 모든 믿는 크리스챤들의 믿음의 조상이 되어 그들이 바라보고 부른대로 열국의 아버지',‘열국의 어머니가 되었다.

자신을 바라본대로, 부른대로 정말 이루어진 것이다.

양자물리학에서 관찰자 효과라고 발견한 이 원리가 성경 창세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음을 20여년 전에 나는 발견하게 되었다지금 눈앞에 펼쳐진 주어진 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더 중요한 것임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내가 나 자신을 바라보는대로 내 미래가 이루어 질것임을 나는 확신했다.

아브라함이 복덩이였기에 믿음으로 그의 자손이 된 나도 복덩이가 됨을 적용했다.

그제야 나는 버림받은 아이’, ‘쓰레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 온 세상에 복을 전달하기 원하는 복덩이됨을 고백할 수 있었다. 바닥을 치던 나의 자존감과 정체성이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180도 변환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마치 미운오리 새끼처럼 살아온 내가 백조임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

나 역시 아브라함처럼 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려고 부르심을 나는 성경을 통해 믿게 되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율이 통과하는 것처럼 유레카를 외치는 순간이었다.

유레카를 외친 후 나는 즉시 내 이름을 나 자신에게 홍사라라고 명명했다.

나 자신에게 열국의 어머니라는 새로운 이름과 정체성을 새롭게 부여해 주었다.

모든 메일의 주소를 hongsara를 넣어 만들었다. 그리고 20여년이 흐르는 시간동안 나는 나 자신을 홍사라”, 온 세상에 복을 전해 줄 열국의 어머니가 될 사람으로 바라보고 부르며 살아 왔다. 책인사 카페에 닉네임을 등록할 때에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홍사라였으니까.

내가 나 자신을 온 세상에 행복을 전할 복의 통로이자 열국의 어머니로 바라보게 되면서 나의 가치가 점점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나 자신을 '버림받은 아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나 자신을 '쓰레기'라고 정의하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머물렀던 생각의 감옥 문을 마스터키로 열고 당당히 걸어 나왔다.

자유와 해방감을 그 순간부터 맛보게 되었다.

 

아브라함이 75세 부르심을 받아 100세 아들을 낳을 때까지, 나중에 이삭이 자라 모리아산에서 진정한 믿음의 조상이라 인정을 받기전까지 그는 허물과 부족함이 심히 많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생명이 위험에 이를 때마다 아내 사라를 여동생이라고 방패삼기도 했다.

사라를 통해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하갈을 통해 배다른 아들을 낳기도 했다믿음의 조상이라고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으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바라봐 주셨다. 열국의 아버지가 되기에는 허물이 많았으나 하나님이 그를 열국의 아버지로 바라봐 주셨고, 그는 결국 열국의 아버지다운 그릇이 되었다.

관찰자 효과는 내가 바라보는 대로 내 미래와 인생이 결정되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더 강력한 관찰자 효과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더 아름답게 바라봐 주시는 것이었다. 지금은 내 모습이 형편없이 공사중이나 하나님은 나를 완성된 아름다운 존재로 끝없이 바라봐 주셨다.

성경을 통해 나는 관찰자 효과를 발견했고, 내 삶에 적용했다.

관찰자 효과를 통해 나는 진흙탕같았던 가정 환경을 뚫고 나왔다.

새로운 정체성을 바라보면서 너덜너덜해진 마음의 상처도 회복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을 누구로 바라보느냐 하는 단순한 시각의 차이 관찰자 효과가 재능의 차이, 인생의 차이, 미래의 차이를 어마어마하게 벌려 놓는다. 앞으로 펼쳐질 내 인생은 지금까지 내가 바라본 대로 열국의 어머니의 그릇으로 준비될 것을 기대하며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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