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몸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메를로퐁티는 몸의 철학자다. 몸으로 현상학을 통째로 재구성했다. 메를로퐁티가 말하는 몸은 우리의 신체(body)다. 몸의 현상학적 의미는 뭘까? 철학의 주제는 주로 정신이나 의식, 이성과 같이 비육체적인 것이 일반적인데 왜 메를로퐁티는 비정신적인 육체를 화두로 삼았을까?
피겨와 현상학
신체의 표현 예술인 피겨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그래서 우선 김연아의 피겨에 메를로퐁티가 말하는 몸의 현상학을 한번 적용해보자. 캐나다 밴쿠버의 퍼시픽 콜리시움 실내 빙상경기장.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 랩소디 인 블루에 맞춰 김연아가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한다. 김연아의 몸이 한 마리 나비처럼 우아하게 공간을 휘 젖는다. 김연아의 몸은 공간을 자유자재로 해석하고, 장악하고, 지배한다. 공간은 그녀의 몸과 일체가 된다. 발에 신고 있는 스케이트도, 몸에 걸치고 있는 푸른색 의상도 몸의 일부이다. 신체적 종합의 연장(extension)이다. 아니 몸과 통일되어 있는 몸 그 자체이다. 김연아는 자신의 몸짓으로 관객과 소통한다. 김연아의 신체는 세상과 그녀의 예술혼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피겨를 타는 김연아의 몸을 조종하는 것은 그녀의 의식이 아니다. 몸 스스로 겨냥하고, 움직이고, 표현한다. 몸은 의식의 하인이 아니라 주인이다. 피겨를 타는 팔과 다리 사이에는 특별한 교감과 대화가 필요 없다. 팔의 언어를 다리의 언어로 번역할 필요도 없고, 다리의 움직임을 팔의 봄(seeing)으로 관찰할 필요도 없다. 서로는 서로를 소환하거나 파견할 필요가 없다. 몸 그 자체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에 몸을 구성하는 단위 요소들끼리의 국부적 소통은 잉여에 불과하다. 몸짓 자체가 언어이고, 대화이고, 담화이다. 모든 소통은 거기에 녹아 있다. 그 안에 거주한다. 김연아는 몸으로 피겨의 의미를 모두 드러낸다. 피겨라는 하나의 진리가 완성된다.
몸뚱아리가 아닌 몸
서양 철학에서 신체는 오랫동안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플라톤에서부터 데카르트에 이르기까지 신체는 몸이 아니라 몸뚱아리였다. 신체는 정신의 자유를 방해하고 구속하는 거추장스러운 외피에 지나지 않았다. 신체가 없으면 정신은 더 맑은 영혼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 텐데 그놈의 몸뚱아리 때문에 정신의 판단이 흐려졌다. 신체는 정신을 통해 통제되고, 조종되는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았다. 생각하는 주체는 정신이고, 신체는 생각되어지는 대상일 뿐이었다. 메를로퐁티는 이러한 신체에 독립적 지위, 주권을 부여했다. <지각의 현상학>에서 메를로퐁티는 기존의 생리학적, 심리학적 해석을 모두 거부하고 신체를 혁명적으로 재해석했다. 메를로퐁티에 의하면 신체는 단순한 의식의 전령이 아니라 의식과 세계를 중재하고 매개하는 당당한 주체다. 신체가 없으면 의식도 없고, 세계도 없다. 신체는 세계를 읽고 해석하는 주체다. 신체에 의해 세계는 의미를 획득한다. 신체는 결국 나 자신이다.
신체가 매개하지 않는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경험, 감각, 과학이 지배하는 세계다. 이들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없다. 세계는 곧게 현상되지 않는다. 메를로퐁티는 경험이나 감각, 과학은 “의식의 증언이 아니라 세계의 편견에 기초한다.”고 말한다. ‘본다’ ‘이해한다’ ‘감각한다’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색깔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며, 추위나 더위, 물체의 두께, 습도 등을 느끼는 것도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영하의 날씨에도 덥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상의 날씨에서도 추위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 피부의 노화가 진행된 노인들은 펄펄 끓는 냄비의 뚜껑을 맨손으로 쥐어도 괜찮지만 아이들은 백발백중 화상을 입는다. ‘나는 너를 이해한다.’고 말할 때 그 이해의 폭은 균질하지 않고 사람에 따라 울퉁불퉁하고 거칠다. 극단적으로는 오해를 이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사물에 대한 인상, 성질, 자극 등의 감각으로는 사물의 본 모습을 그대로 파악할 수 없다. 감각의 개념은 지각의 모든 분석을 왜곡시킨다. 감각은 우리를 속인다. 감각이 아닌 신체에 의해 해석될 때 세계는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모습, 진리를 드러낸다.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스케이트와 피겨를 할 때 신고 있는 스케이트는 본질적 속성이 다르다. 전자는 감각적 ‘봄’의 대상일 뿐이고, 후자는 신체를 구성하는 부속기관이다. 대상은 우리의 눈앞에 있다. 그러나 신체는 우리와 함께 있다. 대상은 나의 시각의 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고 사라질 수도 있다. 메를로퐁티의 표현을 직접 빌리면 “대상의 현존은 가능한 부재가 으레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신체는 다르다. 신체는 나의 대상이 아니라 나의 일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앞에 현존할 수 없으며, 나로부터의 부재도 있을 수 없다. 나는 나의 신체로써 외부의 대상을 관찰하고, 다루고, 검사하고, 조사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신체 그 자체를 관찰하거나 조사할 수는 없다. 가게에 진열된 스케이트를 만질 수는 있지만 내 몸에 신고 있는 스케이트를 만질 수는 없다. 피겨 연기 중에 스케이트 날을 손으로 잡는 것은 대상을 만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몸짓의 일부다. 그 몸짓으로 김연아는 관객(타인)과 소통하고, 빙상경기장(세계)에 자신을 드러낸다. 나의 신체는 세계의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과 우리와의 의사소통수단이며, 규정된 대상의 총합으로서가 아니라 규정된 모든 사고에 앞서 스스로 우리의 경험에 끊임없이 현존하는 잠재적 지평이다. 의식은 세계, 신체, 타인들과의 내부적인 의사소통이고, 이들 옆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 의식은 경험 과정에서 확립된 연합의 결과가 아니라 상호 감각적 세계에서 나 자신에 대한 전체적인 의식적 파악이다.
신체의 주권은 독재적이지 않다. 세상과 소통하는 호혜적 주권이다. 때로 신체는 타인을 드러내고, 세상을 드러내기 위해 뒤로 빠진다. 영화의 장면이 분명하게 보이도록 하는 데 필요한 영화관의 어둠처럼 자신을 감춘다. 이때의 신체는 몸동작과 그 목표가 풀려나가는 은밀한 힘의 저장소 역할을 한다. 김연아의 신체에 저장된 힘에 의해 점프, 회전과 같은 피겨의 각종 동작들이 차가운 공기를 뚫고 빙상경기장의 공간에 펼쳐진다. 내가 신체를 가지지 않는다면 나에 대하여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메를로퐁티는 “존재와 형태들, 지점들이 나타날 수 있게 되는 면전인 비존재의 지대가 나의 신체”라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메를로퐁티의 신체는 사르트르의 무와 겹친다.
습관은 제2의 천성
메를로퐁티는 <지각의 현상학>에서 심인성 실명(心因性 失明) 환자의 사례를 면밀하게 추적한다. 그걸 바탕으로 현상학적 지각의 의미와 신체의 비밀을 밝힌다. 메를로퐁티에 의하면 이런 환자들은 추상적 운동(명령에 따라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한참 더듬거린 후에야 간신히 수행한다. 그러나 이런 환자들도 모기에 물린 지점은 단번에 발견한다. 왜냐하면 모기에 물린 지점을 손이 찾아가는 것은 객관적 공간에서의 위치 짓기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 자신의 현상적 손으로 현상적 신체의 가려운 지점에 도달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긁는 능력으로서의 손과 긁는 지점으로서의 물린 지점 사이에서 체험된 관계는 고유한 신체의 자연적 체계에서 주어지기 때문에 그 활동은 전적으로 현상적인 것의 질서에서 일어나고 객관적 세계를 거치지 않는다는 것이 메를로퐁티의 설명이다. 피겨 연기를 하는 도중 김연아가 스핀 동작을 구사하기 위해 다리를 들고 스케이트 날을 쥘 때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더듬거리지 않고 단번에 그걸 수행한다. 그녀의 몸은 물리학의 법칙이 적용되는 객관적 세계에 속한 것이 아니라 현상의 세계에 속한 것으로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메를로퐁티는 “우리가 움직이는 것은 우리의 객관적 신체가 아니라 현상적 신체”라고 말한다.
<지각의 현상학>에서 메를로퐁티는 또 다른 예를 들고 있다. 이 환자는 옷을 꿰매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이 때 이 환자가 가위나 바늘을 찾을 경우 손이나 손가락을 먼저 찾을 필요는 없다. 이것들은 객관적 공간에서 발견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지향적 실마리라는 끈으로 신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옷감을 자르거나 꿰맬 순간이 다가오면 신체가 자동으로 반응해서 가위나 바늘로 향한다. 그리고 환자는 이 동작을 전개하는 무대와 공간을 더듬을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공간 역시 그에게 주어지는 실재적 세계이고 ‘자를’ 한 조각의 가죽이며, ‘꿰맬’ 안감이기 때문이다. 메를로퐁티는 “사람은 자신의 신체이고, 그의 신체는 어떤 세계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동작들이 가능한 것은 공간이 환자의 동작이 이루어지는 장(場)내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 환자가 작업을 끝내고 밖으로 나갈 경우 출구의 문이 적당한 거리 내에 있지 않으면 문을 여는 동작을 할 수가 없다. 장애는 운동의 장의 협착에서 성립되며 그 후부터 그 장은 현실적으로 만져질 수 있는 대상들에 국한되고, 정상인이라면 그런 대상들을 포함하고 있을 가능한 접촉의 지평을 배제한다.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보낼 때 자판을 보지 않고도 빠른 속도로 글자를 입력할 수 있는 것은 자판이라는 공간을 우리의 신체적 공간에 통합시켰기 때문이다.
모든 청춘이 김연아처럼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눈 뜬 봉사가 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신체를 부단하게 연마해야 한다. 눈과 귀를 다듬고, 손과 발을 훈련시켜야 한다. 그래야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똑 바로 볼 수 있고,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 <지각의 현상학>에 등장하는 환자 슈나이더는 자신을 치료하는 골드슈타인 교수의 집 앞을 지나가면서도 그 집을 알지 못한다. 메를로퐁티는 그 이유를 “그곳에 가고자 하는 의도에서 외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녁을 명중시키기 위해서는 활시위를 팽팽하게 잡아당긴 후 과녁을 향해 화살을 날려 보내야 한다. 활을 외출시켜야 한다. 화살 통에 갇혀있는 화살에는 녹만 슨다.
내 인생의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선 집을 나서야 한다. 내 의식과 신체를 외출시켜야 한다. 외출을 하기 위해서는 옷매무시도 고치고, 거울도 보고, 얼굴도 매만져야 한다. 자신을 가꾸고 살찌우는 일을 게을리 하면 내 몸과 마음은 영원한 과거에 갇힌다. 내 인생도 갇힌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신체를 아름답게, 강하게 가꾸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몸에 유익한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김연아가 피겨로 세계를 제패한 것은 피겨 하는 습관을 몸에 잘 익혔기 때문이다. 좋은 습관이 몸에 붙으면 내가 어떤 대상을 잡고자 할 때 내 신체가 알아서 그 대상을 향해 벌떡 일어선다. 그리고 주체적으로 능력을 발휘한다. 나의 신체의 중요한 영역들은 신체의 그 행동에 헌신하고 행동이 가지는 가치에 동참한다. 메를로퐁티의 말을 직접 옮기면 “습관은 신체가 새로운 의미에 침투당하고 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것에 동화되고 가치를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내 몸이 게을러지려고 할 때 메를로퐁티를 기억하자.
[출처] 현상학적 세상읽기, 몸의 철학자 메를로퐁티, 나는 내 몸으로 세상과 소통한다.|작성자 chamnet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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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약력
농협대 논술출제 위원, 농식품부 귀농귀촌전문강사, 농식품교육문화정보원 영농네비게이터, 의왕시 바르게살기협의회 부회장, 現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연구교수, 現 강원종합뉴스 논설위원,現 한국키르기스스탄 협력위원회 위원장
출처: https://nonghyup1004.tistory.com/entry/쌀-소비량-과연-줄었을까 [숲 위의 인문학: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