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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활동

대국굴기에서 보는 리더십-김혁 성균관대 교수님 특강



스페인 


유태인은 당시 유태인이 백정보다 더 천한 것으로 여겨졌다. 당시 카톨릭은 예수를

인간이 아닌 신으로 믿고 있었으나 유대인은 예수를 죽인 백정보다 못한 것으로 인식. 대부분 3D업종에 종사. 유태인 추방 이들은 이베리아 반도로 추방되었는데 당시 무슬림이 다수로 종교차별이 없었음. 나중에 네덜란드로 추방(1492년)

스페인은 통일군주제였고 해외에서 들어오는 금, 은 등이 인플레를 일으켰다. 스페인내 상공업을 육성하지 못했고 올리브 80%가 스페인에서 수출. 농업국가이며 관광수입이 국부의 50%임. 스페인은 게르만족이 아니라 고트족임


네덜란드 


철저히 장사꾼의 나라고 스페인의 식민지였음. ※ 통화주의 프리드만(돈 찍으면 인플레된다. 케인즈-돈 찍으면 잠자는 산업을 일으킨다. 국방도 영국에 의뢰할 정도로 

철저히 business-oriented된 나라임. 가볍고 빠른 배의 건조기술로 임진왜란때 이런 기술이 일본에 전해졌고 우리나라는 건조기술이 발전되지 않아 바닥이 평면에 두터운 배 구조였음. 당시 일본은 무역항을 만들어 줬는데 네덜란드 상인을 위한 항이었다.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지금의 주식회사)를 만들었는데 기존 항해 시 투자를 받아 수익금을 나눠주던 체계를 돈을 자본금으로 받고 이익만 배당하는 형식의 지금의 주식회사가 설립. 동인도  회사는 외교권을 가지고 있어 해당 국가에서 쇄국을 하면 바로 함포외교로 응대. 주식을 받아 필요시 현금화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주식을 사고 파는 증권거래소가 처음 네덜란드에 설립. 


영국


해적일로 먹고 살던 나라. 스페인 선박을 약탈하면 배 하나에서 국부의 50%가 나왔단다. 1년 예산의 절반이 들어왔다는 얘기도 있음. 이에따라 스페인 무적함대는 영국을 공격하러 나섰고 영국정부는 해적(두목 드레이크경)에 도움을 요청. 그러나 무적

함대의 패배로 해상장악력이 급격히 약화. 스페인 배는 거대한 배였고 영국 해적의 배는 작고 기동력이 좋아 큰 배가 터닝할 때 신속히 후미나 측면에서 공경을 했다고.

스페인 군함 1/3이 파괴되고 돌아오다 풍랑에 의해 총 2/3가 파괴. 정치는 입헌군주제. 왕은 군립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이념으로 정도전의 왕 밑에 사대부를 두고자 했으나 이방헌에 의해 실패될 때의 그 이념임. 영국의 산업혁명은 인도 때문에 가능했음.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로 면화 옷을 입고 있었고 이를 위해 방적기술에 의한 산업혁명이 일어났음. 유태인은 네덜란드 영국에 까지 들어오고 방적기술이 유대인에 의해 발전되었다고 함. 인도 식민지 결과 돈이 되지 않은 영국은 중국을 식민지로 만들 수 도 있었으나 수지타산 상 식민지 보다는 홍콩을 100년 조차하고 중국에 수출하는 전략을 수립. 아편전쟁때 홍콩을 100년간 조차하다 몇년전 중국에 넘긴 그 사건.


독일


EU의 모태. 6000개의 화폐가 있었고 무료교육은 대학원까지 실시 이에 필요한 돈은 왕실에서 갹출했다고 함. 관세동맹, WTO가 모두 독일의 예에서 나왔다고 함. ※ GATT는 2차 공산품 관세 철폐, WTO는 1~3차 관세 철폐. 독일은 인플레 방지가 지금까지 목표. 성정 정책을 편 적이 없다.


약탈하던 나라는 대부분 인플레로 경제가 망가지고 제조업에 대한 투자가 전무해

강소국으로 재편된 것이라고 느껴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