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의 반(反)형이상학적 태도를 그대로 이어받은 학파가 바로 논리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다. 이 학파는 근대의 경험주의적 · 실증주의적 전통 위에 기반을 두고, 특히 현대 과학의 발달에 자극을 받아 일어난 철학 운동이다.
이 운동의 모태에 해당하는 오스트리아학파는 1923년 비엔나대학의 슐리크를 중심으로 철학자들 · 과학자들 · 수학자들의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이 1929년 《과학적 세계관》을 발표하면서 하나의 철학 운동으로 발족되었던 것이다. 이후 여러 차례의 국제대회를 거치는 동안 자못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나, 나치 정권의 탄압으로 대부분 학자들이 영국과 미국으로 망명하여 실질적으로는 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후에도 학자들의 꾸준한 활동으로 많은 동조자를 얻었으며, 특히 미국의 실용주의와 접촉해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가고 있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비트겐슈타인과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을 배격했다. 형이상학적 주장이란 경험적으로 검증할 어떠한 수단도 없으므로, 결국 무의미하다. 가령 “절대자는 시간을 초월해 있다”와 같은 주장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 검증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주장이 참인지 거짓인지에 대해 전혀 말할 수가 없다. 의미가 있는 명제란 경험적으로 그 진위(참과 거짓)가 검증되는 경험적 종합명제와 논리적 형식에 의해서 그 진위가 결정되는 분석명제, 이 두 가지뿐이다. 결국 이 두 가지 명제 가운데 어느 것도 아닌 형이상학적 명제는 사이비 명제(pseudo-proposition)요, 무의미한(meaningless) 것이다.
지금까지는 형이상학이 공허하고 모호하다거나 또는 쓸모없고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비판을 받아왔으나,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그것이 ‘무의미하다’라고 몰아세운다. 다시 말하면 형이상학적 명제는 논리적 구문법을 어긴 사이비 명제이므로 그 진위를 따질 수 없는 것이요, 그것은 어떠한 인식적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식론에 대해서도 이들의 부정적인 태도는 단호하다. 가령 신칸트학파는 인식론이란 외부에 있는 세계의 실재성과 같은 문제를 따지는 것이므로 철학은 곧 인식론으로 바뀔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외부의 세계가 우리의 경험과 따로 떨어져 실재한다거나 또는 실재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주장을 검증할 만한 방법 자체가 없다고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주장한다. 그러므로 외부 세계에 대한 주장은 절대자나 사물 자체에 관한 주장과 마찬가지로 무의미하다.
인식론이 주제로 삼는 실재론이니 관념론이니 하는 용어들은 모두 무의미한 사이비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만일 인식론이 그 주제를 바꿔서 인간의 정신 작용을 다루는 것이라면 그러한 인식론은 심리학으로 바꿔야 하며, 철학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어떤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윤리학에 관해서도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일단 경험을 넘어선 초월적인 윤리학을 배제한다. 초경험적인 가치에 관해 무엇인가를 주장한다는 것은 일종의 초월적 형이상학이며, 따라서 그것은 역시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나 윤리학의 세부적인 문제까지 들어가면, 논리적 실증주의자 간에도 견해의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슐리크7)가 윤리학을 공리주의와 같은 자연주의적 이론으로 바꾸고 그것에서 형이상학적 요소를 없애려고 한 데 대해, 카르나프8)와 에이어는 보통의 윤리적 주장들이 실은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예컨대 “거짓말은 나쁘다”와 같은 주장은 거짓말에 관해 경험적 진술을 하는 것도 아니고, 거짓말을 어떤 초월적 가치와 관련짓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거짓말에 대한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또는 다른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충고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요컨대 그 주장은 어느 경우에나 인식적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감정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신은 존재한다”라는 형이상학적 발언이나 “거짓말은 나쁘다”와 같은 윤리적 발언은 겉으로 보아서는, 의미 없는 말들을 닥치는 대로 늘어놓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은 어떤 존재가 현재 존재한다거나 혹은 그 존재의 성격에 관해 어떤 정보를 알려준다거나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그러한 지식을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철학적 명제가 아니라, 과학적 명제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철학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철학이란 과학적 명제를 분석해서 그 의미의 내용을 분명하게 하고 철저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이에 그치지 않고 철학이란 의미 있는 명제로 표현되는 이론이 아니라, 그러한 명제를 논리적 분석에 의해 분명하게 하는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묘한 말이 생겨난다. 즉 철학적 명제란 엄밀히 말해서 무의미한 것이니, 사람들은 《논리 철학 논고》에 쓰인 비트겐슈타인의 명제마저 그를 이해한 다음에는 무의미한 것으로서 버려야 한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관은 결국 철학의 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https://youtu.be/Gt_cv6FUbcw?si=Z5uFx7LDLg8Fjtxm
교수 : 임창덕
강연문의 : 010-8949-4937
이메일 : limcd2002@naver.com
강사소개
상담학박사, 숲생태심리학자, 스토리 마이너, 국가기술자격(수목치료기술자, 조경기능사, 이용사), 숲해설가, 숲사랑지도원, 식물보호산업기사(2차 진행중), 직업상담사(2차 진행중), 도시농업관리사, 공인중개사, 사회복지사(1급), 요양보호사(1급), 바리스타, 부동산공경매사, 청소년지도사, 심리상담사, 노인심리상담사, 한국어교원, 긍정심리학전문강사, 재무설계사(AFPK), 펀드투자상담사, 파생상품투자상담사, 여신심사역, 신용관리사(국가공인), 경영지도사(마케팅), TOEIC 885점, 평생교육사, 창업지도사(삼일회계법인),매일경제, 동아일보 등 200여 편 기고, 저서(SNS로 브랜드 가치를 높여라, 성공을 부르는 SNS 마케팅, 단 하나의 질문,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팬데믹 시대, 멈춰진 시간들의 의미, 치유산업(보이지 않는 가슴), 스피치 인문학 존재와 무 1,2 등
강의분야
경영학개론/조직심리학/심리학개론/마케팅원론/ 소비자행동론/귀농귀촌의 이해/농업법률/실전 농지 & 농가 구입 실패 사례/ 로컬푸드와 생명으로 돌아가기/숲치유/산림치유/ 농촌관광/MZ세대 슬기로운 직장생활/은퇴 후 자아 통합감 찾기/퍼스널 브랜딩/브랜드 정체성과 조직시민행동/협동조합 이해와 정체성/사회적 경제의 이해/청소년 진로탐색/앱을 활용한 스마트 워킹/SNS 홍보 마케팅/바로 써먹는 심리학/ 노인심리상담의 이해/부동산 재테크(실천)/부동산 공경매/ 농업세무/재무설계/공무원 및 일반인 은퇴설계/써드 에이지 노후 준비/재미있는 나무 이야기/숲해설 기법/화가 고흐 인문학/식탁위의 인문학/음식과건강/숲해설 방법 등
강사약력
농식품부 귀농귀촌전문강사, 농식품교육문화정보원 영농네비게이터, 의왕시 바르게살기협의회 부회장, 現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연구교수, 現 강원종합뉴스 논설위원,現 한국키르기스스탄 협력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