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불취부귀(不醉無歸)

한국농촌희망연구원장 2014. 5. 15. 09:20

 

 

조선의 왕들 중 정조는 술을 굉장히 좋아했다. 특히 서민들이 즐겨마시는 탁주를 좋아했으며 주안상에는 기름진 고기 안주 보다는 민초들이 먹는 소박한 푸성귀 안주를 즐겼다. 근엄한 왕이 아니라 백성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듣겠다는 인간 정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정조는 어느날 과거시험에 합격한 성균관 유생들을 창덕궁 희정당으로 초대한 후 “옛 사람들은 술로 취하게 한 뒤에 그 사람의 덕을 살펴본다고 하였다. 오늘 취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돌려보내지 않겠으니 각자 양껏 마시도록 하라” (정조실록)고 했다. ‘불취무귀(不醉無歸)’ 정조의 건배사로 유명한 글귀다. 정조의 이 말은 “백성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술에 마음껏 취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주겠다”는 의지를 표현 한 것이다.

이와함께 ‘불취무귀’라는 글귀에는 심각한 붕당 간 대립을 완화하려는 정조의 고육지책이 숨어있기도 하다. 정조는 당시 노론과 서론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며 ‘당색이 다르면 조문(弔問)도 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서로를 원수보듯 해 주요 국책사업이 번번이 무산되는 지경이었다.

정조는 어떤 식으로든지 갈라진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야 했고 술자리는 그러한 의미로 마련된 것이었다. 정조는 여러 붕당의 젊은 유생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해 왕이 친히 내린 술을 마시고 서로 어우러지게 하는 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조의 노력에도 붕당간 협력은 잘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 박 대통령의 취임 6개월을 맞아 여러 기관에서 그간의 평가가 나오고 있다. 조용하게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는 후한 평가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소통이 부족하고 정치가 없다’는 쓴소리도 있다. 세법개정안 변경과 공직자 인사등이 대표적 불통 사례로 꼽히고, 국회를 뛰쳐나간 야당을 끌어안지 못하는 제왕적 대통령상은 안타깝다.

박 대통령이 정조처럼 야당을 끌어안고 소통하는 큰 정치를 보여줘야 할 때다.

/최재호 경제부장 lion@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