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구별짓기-부르디외

한국농촌희망연구원장 2025. 5. 28. 17:11


경제자본만 풍부한 벼락부자들이 상류층으로 진입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상류층의 문화가 '태어나면서부터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체화된 것'이기 때문이죠.

이것을 부르디외는 "시간에 대한 사회적 권력"(1장) 또는 "시간의 포틀래치"(5장) 라고 말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중간적 존재인 프티 부르주아지는, 상류층으로의 진입이라는욕망과 민중계급으로의 추락이라는 두려움 사이에서 늘 긴장한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상류 문화에 대한 외경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상류 문화라는 꼬리표만 붙으면 그것이 무엇이든 순응하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려고 하죠"(6장) 이것을 부르디외는 "상류 문화를 향한 선의, 즉 호의"(6장)라고 표현합니다. 부르주아지와 쁘티 부르주아지가 상류 문화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요약하면,

"전자는 '감상'하고 후자는 그것을 익히려고 ' 훈련'하며, 전자는 온몸으로 체험'하고 후자는 지적(체))으로 '논의'한다" (1장)고 할 수 있습니다. "구별을 위해 노력한다는 건 스스로 뭔가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하는셈일 뿐이죠."(6장) 오히려 민중계급은 부르주아지를 자신들과는 아예 다른 존재로 취급하기 때문에 부르주아지처럼 자신들만의 문화를 누리는데 만족합니다.

"인생 뭐 있어?"라는 태도로 어떤 현실이든 그 속에 안주하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는 44회 장 폴 사르트르의 r존재와 무 에서 언급했던 개념으로 표현하면 "의식의 지향성을 뜻하는 '대자적,이라기보다는 감각의 만족에만 머무르는 '즉자적'인 성격을 됩니다."(서문) "필요성에의 종속"(7장)과 "최소 비용 최대 효과"(7장) 그리고 "순응(씨 )의 원리" (7장)가 민중계급의 문화를 규정하는 모토 motto라고 부르디외는 말합니다.

무엇이든 '효용성'의 측면에서 가치를 따지고, '공짜'와 '사은품'에 집착하며, 다수의 의견이나 행동에서 벗어나는 소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이유이죠. 부르주아지와 민중계급의 차이를 요약하면, "전자는 '형식'을 따지고 후자는 '실용성'을 따지며, 전자는상황'을 중시하고 후자는 '윤리 [도덕] '를 중시하며,전사가 유미주의라면 후사는 기능주의이고, 전자가 '사치 취향'이라면 후자는 '필요 취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중계급은 휴식을 즐기는 법을 모르며, 항상 지배계급에 의해 날조된 문화적 대량생산의 여가활동에 모든 것을 맡긴다. 그날그날 주어지는 목전의 만족 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의 쾌락주의가, 미래가 없거나 미래에 대해 기대할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철학"(3장)이라고 부르디외는 비판합니다.

지배계급이 날조하고 대중매체를 통해 확산시키는 이데올로기를 '상징폭력' symbolic violence으로 정의하면서 말이죠. "광고는 그 시대와 문화의 거울"입니다. "나는 대중매체 메시지의 본질이 그런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어서 속지 않아. 그냥 심심해서 보는 것뿐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단순히 그런 종류의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아비투스' habitus는 특정 환경에 의해 형성되고 체화된 취향'이나 가치관' 또는 습관을 의미하는 행동체계'입니다. 다만 자신의 아비투스가 무엇인지 의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의식적인 습관과 약간의 차이는 있습니다. 그래서"아비투스는 그런 취향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과 생산된 취향. 구별하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루어지고, 특히 후자의 능력은구별 짓기'의 원천으로 작용하죠."(3장)

아비투스만 보면, 그 사람이 어떤 계급의 구성원인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모든 문화적 실천.문학.회화.음악에 대한 선호도는 교육수준 및 출신 계급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취향'이 계급의 표지로 기능하기"(서문) 때문입니다. 이런 아비투스를 부르디외는 "지향하는 목적을 의식적으로 설정하지 않고도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과정들을 의도적으로 준비하지 않고도 객관적으로 목적에 부합할 수 있도록 하는, 객관적으로 통제되고 규칙화될 수 있는, 그리고 집단적으로 조화될 수 있는 원리"(3장)라고 어렵게 표현하고요.

마지막으로 '실천' practice 즉 프랙티스'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일상생활에서 아비투스가 행동으로 드러난 것을 의미합니다. 번역자의 당부처럼, 어떤 뚜렷한 목적이나 목표를 쟁취하기 위한 의도적 행위인 '프락시스'praxis와는 구별해야 하고요.

하상복은 구별 짓기'를 "단순히 나의 문화와 너의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문화는가치 있고 영위할 만한 것이지만 너의 문화는 쓸모없고 가치 없다는 식의 규범적인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정의합니다. "하나의 개별적인 언어나 문화가 보편성을 획득하는 순간, 다른 모든 것은 특수한 것으로 귀결된다"는 건데, 데이비드 베레비의 개념으로 표현하면 부류적 사고'인 셈이죠.